12월에 꽃이 핀다 / 유일연



  나는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본다. 겨울의 여섯 시는 시간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시각이다. 환했던 낮을 등지고 가라앉는 태양과, 차오르는 어둠. 마주하면 등을 돌려버릴 것만 같던 둘이 손을 잡는 순간.
 나는 뭔가를 쓰고 있었다. 어둠을 만나고 나서야, 펜을 놓고 밖을 바라본다. 적막함을 뚫는 겨울의 새소리와 바람 소리는 소리를 느끼기에 가장 좋은 소리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책상에서 일어난다. 무릎을 움직이는 게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또, 겨울의 여섯 시에, 새소리 바람 소리를 지나 나에게 온건 너였다. 나는 깜깜한 거실로 나간다.

  겨울의 여섯 시는 저녁을 먹기에 좋은 시각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저녁을 먹으려 한다. 허전함을 뿜어내는 냉장고의 문을 굳이 열어보지 않는다. 저녁을 먹으려면 나가야 한다.
언젠가부터 추위를 쉽게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추위에 약해진 건 아니다. 겨울의 여섯 시 반은 추위를 느낄 수 있지만, 추위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각이다. 바람도 함께 분다.
저녁이 먹고 싶다는 생각은 흔한 생각이 아니다. 사실 나는, 아무도 없는 겨울의 여섯 시 반을 만끽하고 싶었던 거다. 마트로 향하는 길을 걷는다. 하지만 이내, 발걸음을 돌린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모르는 도시를 걷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몇 년째 같은 곳에 살다 보니,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길을 모두 알고 있는 탓이다. 오랜만이다. 나는, 반가움을 느낀다. 겨울의 네 시쯤에 자리에 앉아서 쓰기 시작한 글은, 일기다. 나의 일기가 아니라, 내가 만난 모든 것들의 일기이다. 내가 쓰는 일기에 나는 등장하지 않는다. 결국 이 모든 일은 너를 위한 일이기에, 너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너를 떠올릴 핑곗거리를 찾은 셈이다.

"안ㄴ-"
  상대가 인사를 끝내기 전에, 재빨리 쳐다본다. 인사말을 끝까지 들어야 할 사람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이다.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특이한 옷을 입고 있다. 내가 입고 싶어하는 종류의 옷은 아니다.

"되찾고 싶니?"
  인사말을 끝까지 들어야 할 사람인지 아인지 판단도 하지 못했는데, 상대는 인사를 끝맺지 않았다. 바로 다음 말을 꺼냈을 뿐이다.

  함께 호수로 향하는 길을 걸었다. 호수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은 태양을 아주 보내준 뒤였다. 겨울의 일곱 시는, 여름의 한밤보다 더 한밤 같은 시각이다. 그날은 특히 그랬다. 나보다 먼저 호숫가에 주저앉은 그 사람은, 나더러 앉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옆에 앉고 싶지 않았다.

"일기 줘."
  못 줄 이유도, 줄 이유도 없었다. 나에게 남은 건 그게 다였으니까. 그 사람은 그걸 호수에 던졌다. 결국 내 안의 너는, 겨울의 일곱 시 십 분에, 어둠과 만나 어둠에 자리를 내어준 태양처럼, 완전히 사라진다.
처음으로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본다.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더 이상의 반응은 해 줄 수 없는 것이.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집에 가."

  청유였는지, 명령이었는지, 권유였는지 모른다. 그 사람의 옆에 앉고 싶지 않았던 나는 곧장 집으로 향한다. 겨울의 일곱 시 이십 분은, 집으로 향하기에 좋은 시각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낯설다. 그래도, 그 길을 향하면 집이 나올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어둠 속에서, 나는 곧장 거실로 간다.

거기에 네가 있었다.
지금도, 거기에 네가 있다.
너는 내가 쓴 일기를 들고 있다. 그제야 가슴이 내려앉는다. 너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일기가 아니다.

"되찾고 싶었니?"

역시 너는 나를 알지 못한다. 내 반응을 네가 보지 못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