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고 싶지만 /반테



  석양의 붉은 빛이 방 안으로 흘러들어와 넘실거렸다. 멍한 시선이 닿는 곳마다 파랗게, 어둡게 물들어간다. 그럼에도 타오르는 붉꽃은 꺼질 줄을 몰랐다. 그런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나는 결국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떨구듯 내려놓았지. 들리는 것은 새의 지저귐과 공기를 가르는 바람의 소리뿐. 아름답나? 모르겠다. 오히려 너를 회상하게 만드는 걸. 흐릿한 시선에 네가 어른거렸다. 네가 없음에도 하늘은 과거와 같다. 그 사실로 인해 아프게도 앓는다.  

  공복이 나를 깨웠기 때문에, 나는 저녁을 먹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웠다. 힘없이 비틀거리는 걸음에 팔다리가 덜렁거린다. 밖은 이미 밤이고 안 역시도 밤이었다. 불을 키지 않은 거실은 어두웠다. 심지어 냉장고 안은 텅 비었지. 아무래도 음식을 사러갔다와야겠다. 그리 생각하곤 대충 옷을 챙겨입었다.  

  밖으로 나오니 약간의 쌀쌀함이 피부를 흩고 지나간다. 천천히 도로를 걸어보지만 보이는 사람이라곤 전무하다. 순식간에 혼자가 된 것 같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정말로 혼자인가? 정말로? 들이킨 호흡이 내 속을 헤집는다. 결국 아무래도 좋다고 중얼거렸다. 정말로? 그럴 리가 없지.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걸음했다. 본래의 목적을 잃은 채 그저 발이 닿는 곳으로 나 자신을 끌어당겼다. 내가 있는 곳은 어디지? 지금 여긴 어디야? 알 수 없었다. 이곳은 모르는 도시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또다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좋잖아, 그치?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멈춘 걸음과 함께 밀려오는 이것은, 허망함일까. 그래도 여전히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뿐이다.  

  나는 허전한 손을 만지작댔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이라고는 공기 한 자락에 지나지 않지만, 감각 만큼은 아까의 기억을 오래도록 안고 있었다. 펜. 펜이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노을이 지고 있던 그 순간까지 내가 그리던 것은 바로 너였다. 나는 너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움이 내가 널 그리워하게 만들어서, 너와의 기억을 그림으로 그려갔다. 아까의 종이에 수놓아져있던 것은 화려한 꽃밭이었다. 그 사이에서 나와 입맞춤하던 너와의 기억을 담았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 내게는 그 종이가 없다.  

  문득,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어라 묘사하기 어려운 특이한 복장의 누군가가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두워서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다. 여자? 남자? 거리의 빛조차도 그 얼굴을 내게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어쩐지 그를 바라보게 된다. 자꾸만 시선이 갔다. 그 순간, 또렷한 눈동자가 나를 마주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속삭인다.  


“되찾고 싶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보폭에 맞추어 걷다보니 호수에 도착했다. 그는 허리를 숙여 호수를 바라보더니, 조그만 돌을 주워 그 위로 던졌다. 퐁. 짤막한 소리.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 역시 곧 따라했다. 퐁. 그가 다시 돌을 던진다. 퐁. 그리고 다시 내가, 퐁. 우리 둘은 한참이나 이 행동을 반복했다. 지겨운 일인데도 지겹지 않았다. 들려오는 소리가 둘 사이의 적막을 계속해서 쪼깬다. 퐁.  

  그 행동을 계속하다보니 어느샌가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새벽이려나. 모르겠다. 핸드폰도, 시계도 없으니 지금이 몇 시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가 놀이를 멈추었기에 나 역시 멈추었다. 호숫가에 앉는 그를 따라 옆에 앉는다. 내가 호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순간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걸 줘.”  


  앞뒤가 뚝 잘린 한마디임에도 나는 그가 말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겐 지금 없는 걸.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내뱉었다. 네 주머니에 있어. 주머니? 의아함에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정말로 있었다. 너와 함께했던 꽃밭의 그림. 그는 그것을 받아들곤 한참을 보았다. 그리고 물 위로 날려보냈다. 종이는 물에 흠뻑 젖어들더니, 녹아내렸다. 한 순간에. 내가 그를 쳐다보았을 때, 그는 이미 나를 보고 있었다.  


“집에 가.”  


  나는 그를 호수에 남겨두고 집으로 향하였다. 모르는 도시의 낯선 길을 걷는다. 나는 곧 어둠 속에서 불 하나 켜지지 않은 내 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불을 켤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황급히 거실로 들어갔다. 그곳에, 아, 네가 있다. 너다, 틀림없는. 네 손에는 내 그림이 온전한 상태로 들려있었다. 분명 녹아버렸을텐데. 그 위에 내가 적었던 우리 둘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나를 바라보는 네 입술이, 움직인다.  


“되찾고 싶었어?”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네 두 눈을 마주하고나서야, 그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아까의 그 사람은 너였다. 분명히 너였어. 나는 바닥에 발이 붙어버린 것처럼 같은 자리에서 멍청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네가 나를 향해 짓는 표정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붙잡고자 말을 꺼내려하지만 이제는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제발. 꺽꺽거리는 소리와 함께 눈에서 방울방울 빗방울이 떨어졌다. 가지 마. 이제야 찾았는데, 이렇게 보낼 순 없어.  

  그러나 넌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고, 내가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